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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범죄의 민낯, 그 아찔한 공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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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1-09-15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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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일함에 빠져 있다가 무심코 놀랍고 아찔한 공포가 엄습해온다. 하지만 대리만족의 쾌감도 확실하다. 대한민국 최초로 보이스피싱을 소재로 한 리얼 범죄 액션 영화 '보이스'(감독 김선 김곡)다. 


부산의 한 대규모 건설현장에서 찰나의 사고가 발생한다. 작업 중인 인부가 나사 풀린 철근에 매달린 위험천만한 상항, 현장작업반장인 전직 형사 서준(변요한)의 기지로 사건은 일단락되고 모두 기뻐하며 안도의 숨을 내쉴 때. 그 잠깐의 '찰나'였다. 서준의 아내는 서준이 현장 사고 책임 가해자로 경찰서에 있어 구속될지 모른단 말에 합의금 7000만 원을 이체했고, 현장 소장은 직원들의 보험 대비를 위해 들어둔 돈을 모두 날렸다. 순식간에 보이스피싱으로 실체 없는 가해자에 빼앗긴 돈이 무려 30억 원이다. 아내는 충격에 빠진 채 교통사고를 당해 혼수상태가 됐고, 자책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장의 장례식장에는 가여운 위로보다 돈을 다 날린 인부들의 피맺힌 절규와 아우성만 가득하다. 공권력의 지지부진한 도움을 마냥 손 놓고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는 상황, 분노에 찬 서준은 직접 응징에 나선다. '보이스'의 시작이다. 


초반의 상활 설정은 다소 허무맹랑하고 김빠진다. 너무 쉽고 허무하게 당한 피해자들에 동정심이 일기보단 우둔해 보일 따름이다. 게다가 아무리 전직 형사라는 설정이 있다고 해도 서준이 공권력을 무시하고, 어리바리한 해커 한 명의 도움을 받아 중국 선양에 위치한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의 본거지로 손쉽게 잠입하는 설정은 지나치게 터무니없다.  


하지만 거대하게 조직화된 보이스피싱의 실체의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 안일함 속에서 덜컥 공포심이 피어오른다. 공포 영화 장르물에서 특화를 보인 두 형제 감독의 장기가 실체적인 공포로 발휘되는 순간이다. 


그동안 개그프로 소재로 쓰이며 지나치게 희화화됐고 안일하게 여겨왔던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의 실체는 그런 조잡함과 우스꽝스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거대하고 치밀하게 체계화된 이들 조직은 철저하게 한치의 오차 없이 기계처럼 돌아가고 있다. 불법으로 수급한 개인정보를 토대로 타겟을 삼고, 이에 맞는 대본을 짠 뒤, 위장 어플과 홈페이지, 전화번호 변환기 등을 활용해 '타겟'을 빠져나갈 수 없게 옭아맨다. 때론 타겟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고, 때론 희망과 공감을 추구하는 수법이 리얼하고 소름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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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 보이스피싱 본거지를 담아낸 미장센이 굉장히 효과적이다. 피라미드 구조로 돼 있는 폐쇄된 쇼핑센터, 이곳에서 계급에 따라 나뉜 이들은 철저한 감시 하에 의식주를 해결하며 각각의 역할을 수행한다. 욕망이 소비로 표현되는 쇼핑센터, 지금은 사용하지 않아 빈 공간에는 또다른 비틀린 욕망들로 가득 차 있다. 황폐화된 자본주의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담고 있는 이 공간은 타인의 고통은 외면하고 개인의 욕망을 추구하는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로 가득하다. 붉고 음습한 조명과 색감까지, 비현실적인 집단의 실체를 파고들며 공포심을 자극한다. 순식간에 몇백억의 성과를 올리며 환호하는 괴물들과, 처참하게 절규하는 피해자들의 대비는 그렇기에 더욱 씁쓸하고 비참하다.  


다만 서준은 이 빠져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거대조직 속에서도 오직 '복수'를 향한 거침없는 질주를 한다. 철저하고 거대한 절대 악에 맨몸으로 맞서는 건 그야말로 무모한 판타지다. 그럼에도 이 남자의 거칠고 처절한 복수극이 이토록 감정적인 위안을 주고, 종국엔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영화는 여전히 활개치는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그려내며, 우리 삶에 깊숙이 뿌리내린 이 범죄에 대한 심각성을 일깨운다. 그렇기에 다소 무리한 설정과 판타지적인 전개는 차치하고, 피해자인 서준이 직접 보이스피싱 세계로 뛰어들어 모든 것을 파헤치는 과정을 낱낱이 그려내는데 목적을 둔다. 또한 확실한 복수극으로 대리만족을 주는데 이어 피해자들의 상처를 위로하는 마음새까지 갖췄다. 그 진정성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영화다. 


변요한의 냉철한 눈빛과 그야말로 처절한 사투는 여운이 깊다. 엘레베이터 전선에 매달려 펼치는 극한 액션과 마지막 옥상 신에서 보여준 눈빛이 특히 인상 깊다. 보이스피싱 범죄조직 총책 곽 프로 역의 김무열은 지적인 엘리트의 모습과 사이코패스적인 면모를 모두 갖춘 깔끔한 미치광이 역을 매력적으로 소화한다. 특히 희망과 공포를 파고드는 다정한 목소리로 피해자를 조롱하고 보이스피싱을 마치 놀이처럼 즐기는 모습까지, 고상하면서도 정상적이지 못한 이중적인 모습을 잘도 표현해낸다.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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