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코미디의 절묘한 조화, '웃픈' 인생 희비극 '싱크홀' [리뷰] >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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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코미디의 절묘한 조화, '웃픈' 인생 희비극 '싱크홀'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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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1-08-11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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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붕우출,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다. 절망 속에도 희망이 있고 어둠 속에도 빛이 있는 법, 이처럼 '웃픈 현생(웃기고 슬픈 현재 인생을 뜻하는 신조어)'의 역설을 유쾌하게 풀어낸 재난 영화 '싱크홀'(감독 김지훈)이다.   


부실 공사로 바닥이 기울거나, 종종 단수가 되는 등 불길한 기운을 뿜어내던 서울 변두리에 위치한 한 빌라가 어느 날 갑자기 싱크홀로 빨려 들어간다. 그것도 통째로. 운 좋게 휴가를 떠나거나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집을 비운 주민들이 있는 반면,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는 그야말로 운도 지지리도 없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11년 만에 서울 입성,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평범한 가장 동원(김성균), 그런 그의 집들이에 왔다가 술에 만취해 그대로 잠드는 바람에 덩달아 재난을 맞이한 직장 후배 김대리(이광수)와 인턴사원 은주(김혜준). 


그리고 동네의 '프로 참견러'이자 이사 첫날부터 동원과 앙숙 관계가 된 빌라 터줏대감 만수(차승원)와 늘 PC방에 죽치고 있더니 하필이면 오늘만큼은 얌전히(?) 집에 있던 만수의 아들(남다름)까지. 


아직 다른 이웃의 생사는 알지 못한다. 지하 500m 싱크홀 속으로 떨어진 이들은 과연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 


'싱크홀' 현상을 최초로 다룬 재난 영화 '싱크홀' 속 설정은 그야말로 암담하고 절망적이다. 갑자기 하루아침에 내 집이 500m 지하로 추락했다. 가장 행복하고 안락해야 할 보금자리가 끔찍하게 무너져 내린 현실, 가족과 이웃의 안위는 물론 나 자신의 생존 여부조차 알 수 없다. 이처럼 참담한 공포가 엄습한 상황에서도 영화는 아이러니하게 유쾌하고 밝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이라 했듯이, 영화 '싱크홀'은 오히려 '웃픈' 설정들로 인해 인생은 완벽한 희비극의 연속임을 역설한다. 


영화는 재난 영화의 기존 문법을 따르지만 흔한 설정을 좇지 않는다. 이상 징후가 계속해서 드리워지며 불길함을 조성하는 등 점차 고조되는 재난 상황의 위기감 조성을 위한 장치를 유별나게 부각하지 않는다. 도리어 좀스러운 의문을 제기할라 치면, 그러길래 아파트를 샀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충고(?)나, 집 값 떨어진단 구박을 받는 현실 반응이 리얼한 유머 코드로 작동한다. 재난 발생 상황 직전까지도 시퀀스는 꽤 길고, 퍽 여유롭고 무난한 이웃의 일상이 지속된다. 재난 영화 특유의 속도감과 웅장함, 긴박감을 기대한 이들이라면 다소 심심한 전개일 수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반복되는 동원과 만수의 티격태격 앙숙 관계로 인해 소소한 코미디를 자아내고, 이같은 관계성을 통해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들이 갑자기 맞닥뜨린 재난이라는 동질감과 현실감을 자연스럽게 부각한다. 실로 어느 누가 갑자기 내 집이 지하로 빨려 들어갈 거라고 감히 상상이나 할까. 


하지만 재난이 발생해도 영화의 기조는 한결같다. 재난에 빠진 비참한 피해자를 부각해 고통을 통감케하거나 강요하려는 시도는 없다. 나서서 영웅을 자처하는 인물도 없다. 이같은 재난 상황에 면역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대책 없는 행동들의 연속이 도무지 웃음을 참기 어렵게 한다. 이를테면, 최대한 식량을 모아야 한다고 하면서도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먹으면 배탈이 난다고 투정하거나 추락해서 떨어진 119의 드론 헬기를 보면서도 드디어 구출되는 거라며 환호를 내지르는 이들이다. 반면 싱크홀 안과 밖의 희비교차는 적나라하다. 흔들리는 지반과 기상 악천후로 구조가 불가능한 소방대원들의 긴박함과, 생존자들이 가족을 걱정하며 끼니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작 안에선 무너져 내린 자원(?)을 활용해 진흙 통닭구이를 실컷 뜯고 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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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리얼하면서도 판타지가 절묘하게 교합된 재난극은 이색적인 재미를 유발한다. 


또한 같은 생사고비를 겪고 있는 동질감 덕분에 싱크홀 사람들은 그동안 헤아리지 못했던 상대의 처지를 이해해나가는데, 이 과정 또한 이 영화가 지닌 묘미다. 사사건건 앙숙이었던 이웃 동원과 만수는 '가장'이란 무게로 동질감을 갖고, 그토록 냉랭했던 만수와 아들의 관계도 개선될만큼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한 법이다. 김대리와 인턴사원도 삼포세대 청춘의 고민을 이해하며 서로를 공감해나간다. 이처럼 재난 속에 피어난 연대는 현실적인 온기를 갖고 있기에 몰입을 높인다. 진짜 가족이 되고, 이웃이 된 이들은 절망보단 희망을 품고 생존 의지를 다진다. 보잘것없고 평범할지라도, 그리고 대단한 능력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본들 없을지라도 함께 손을 맞잡고 힘을 합치는 '연대'의 의미가 제법 뭉클하다. 


물론 재난 영화인만큼 희생도 불가피하다. 하지만 희생자들에 대한 예우와 존경을 갖춘 연출의 따스하고 애틋한 온기가 결코 억지스럽지 않다. 


마지막 탈출 신은 긴박하면서도 '신박'하기 짝이 없다. 한결같이 영화의 유쾌한 기조를 유지하는, 다신 없을 기발한 탈출 도구다. 


부동산과 취업난, 비정규직 등 사회 이슈와 더불어 현실적인 싱크홀 소재를 결합해 리얼리티를 더하면서도 유쾌한 판타지를 선사하는 '싱크홀'이다. 결국 '싱크홀'은 재난 상황이란 극적 설정을 활용해 인생의 희비극을 말한다. 불안한 미래를 좇는 나날들, 절망적이고 암담한 현실의 연속. 그러나 행복하기로 결심하는 순간, 그것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고 너무도 손쉽게 얻을 수 있다. 행복한 인생은 온전히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는 셈이다. 결국 영화 속 탈출의 의미는 인생의 희비극을 겪으며 좌절과 희망을 반복하는 평범한 이웃들을 향한 위안이자 응원이다. 그렇기에 엔딩 영상 속 진짜 '행복'의 가치를 발견한 이들의 모습이 더욱 대견할 따름이다. 


워낙 코미디 연기에 도가 튼 차승원, 김성균의 연기는 차치하고, 이광수의 '밉상 김대리'는 신스틸러 노릇을 톡톡히 한다. 억울한 표정을 한채 고생을 할 때마다 웃음이 절로 보장된다. 하지만 유일하게 극 중에서 변화하고 성장하는 캐릭터로서의 큰 의미를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초반 얄밉고 이기적인 김대리의 진지한 속내와 고민, 그리고 사랑과 성장에 이르는 과정을 코믹과 진지함을 능수능란하게 오가며 연기한다. 인턴 역의 김혜준 역시 은근히 엉뚱하게 웃긴다. 그런 두 사람의 호흡이 신선한 재미를 더한다.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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