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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적 재미보다 메시지에 치중한 '제8일의 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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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1-07-07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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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달이 뜨는 밤, 봉인에서 풀려난 붉은 눈이 7개의 징검다리를 밟고 자신의 반쪽 검은 눈을 찾아간다. 마지막 제 8일의 밤, 그 둘이 만나 하나가 되면 고통과 어둠만이 존재하는 지옥의 세상이 열린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제8일의 밤'은 김태형 감독이 6년간 준비해온 데뷔작이다. '뒤통수', '머리카락 사이에 숨어 있는 검은 눈알'이라는 짧은 메모로 시작된 발상은 2500년 전 인간들에 고통을 주기 위해 지옥문을 열려고 했던 요괴를 붉은 눈과 검은 눈으로 나눠 봉인한 부처의 이야기를 마치 실존하는 전설처럼 구현해냈고 이제 다시 '깨어나선 안 될 것'을 막기 위한 이의 사투로 이어진다. 


짙은 불교적 색채와 더불어 아주 오래전부터 실존했던 것 같은 요괴 이야기, 그리고 7개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붉은 눈과 이로 인해 벌어지는 기괴한 사건들. 이같은 스토리의 구현은 흥미롭고 그럴싸하다. 하지만 막상 스토리가 전개될수록 허점이 거듭되며 기대를 반한다.  


영화는 도입부부터 오랜 시간 공들여 '깨어나선 안 될 것'의 전설을 소개한다. 하지만 매력적이고 독창적인 이 소재를 제대로 이끌어나갈 캐릭터와 전개의 설득력이 부족하다. 


금강경 속 부처의 사리함을 찾아 헤메던 학자는 유물 위조 사건으로 평단에서 매장당한 뒤에도 14년간의 맹렬하고 어리석은 집착으로 피를 제물로 바쳐 붉은 눈을 깨운다. 이른바 '클리셰 범벅'으로 깨어난 '그것'의 존재부터 퍽 김새는 시작이다.  


이어지는 주요 캐릭터들의 설정 또한 크게 특출나지 않다. '지키는 자'의 운명을 타고나 '그것'을 막아야 하는 진수(이성민)는 영화의 주제이자 메시지인 '번민'과 '번뇌'의 고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인물이다. 한 손에는 염주를 묶고 또다른 손에는 도끼를 든 퇴마 스님이라는 설정은 꽤 매력적이다. 게다가 영화 시작 후 40분 내내 의도적으로 말을 하지 않고, 자신을 찾아온 동자승 청석(남다름)에게도 불편하고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거리를 두는 모습은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허나 막상 밝혀진 그의 과거 설정은 뻔하고 진부하기에 이전까지 호기심이 일던 캐릭터의 표정과 몸짓들은 순식간에 이런 유형의 인물들이 지녔을법한 습관적이고 상투적인 행위로 전락한다.  


진수와 얽힌 과거의 인연과 운명을 알지 못하고 그저 그를 따를 뿐인 동자승 청석(남다름)은 묵언 수행 중인 극 초반엔 순수하고 맑은 눈빛과 때묻지 않은 순박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진수를 통해 언어와 소리를 표현하게 된 이후부터는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유아적인 모습을 보이며 매력을 반감한다. 


형사 호태(박해준)는 심각하게 일차원적으로 그려진다. 즉 괴기한 살인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나가는 키 역할을 해야 하는 인물임에도 긴박감이 느껴지긴 커녕 히스테릭하고 전형적인 형사의 모습만 부각되니 제 직업의 기능적 역할을 못하는 캐릭터는 보고 있기 답답할 노릇이다. 또한 후배 형사 동진(김동영)과의 관계성을 꾸준히 암시하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풀리진 않기에 인물은 물론 관계성에도 심각하게 설득력을 잃는다. 


신비로운 무당 캐릭터 애란(김유정)은 '제8일의 밤'의 비밀을 간직한 결정적 캐릭터다. 무언가 말을 하고 있는 듯한 눈빛이지만 전체적으로 감정을 배제한 무표정한 모습은 신비로운 서스펜스를 자아내지만, 그의 전사가 풀리는 순간 역시나 새로울 것은 없다. 


모든 인물 설정이 크게 클리셰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니 허울은 좋아도 실속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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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적 쾌감이라도 강렬하면 좋으련만, 이는 더욱 기대하기 어렵다. 극은 8일의 과정을 일별로 나눠 순차적인 시간의 '흐름'으로 풀어가는 스토리다. 7개의 징검다리란 악의 여정을 강조한 만큼 갈수록 사건이 전개되고 긴장감이 고조되어야 마땅한데 며칠이 지나도록 지지부진하다. 마지막 8일을 기다리는 시간이 매우 단조롭고 지루하기 짝이 없다. 미라처럼 하루 만에 바짝 마른 변사체가 발견되는 살인사건, 이 얼마나 끔찍하고 괴기스러운 설정 이건만 '제 8일의 밤'은 이를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른다. 이같은 장르는 결말의 메시지를 담기 위한 도구이자 행위일 뿐, 이를 자세히 묘사해 긴박감과 공포심을 자극할 의도가 전혀 없어 보인다. 


그나마 마지막 8일의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볼만해진다. 기어코 최후에 다다른 어둡고 오싹한 북산의 밤, 고대 산스크리트어와 결계 부적 등으로 치장한 채 절망과 두려움에 맞서 절대 와서는 안 될 '그 것'을 막기 위해 마지막 행위를 벌이는 주인공의 모습은 그제야 안쓰럽고 가엾으며 애틋하다. 이는 배우 이성민이기에 가능한 내공이다. 그토록 폐쇄적이고 염세적이었던 인물이 절정으로 치달은 번민과 번뇌 속에서 운명의 족쇄이자 업보를 벗고 깨달음을 얻는 순간, 뜨거운 자책과 후회를 담은 이성민의 뚜렷한 눈빛은 강렬한 몰입감을 이끌어낸다. 


'제8일의 밤'에서 8이란 숫자는 완전, 불멸, 다시 태어남을 뜻하는 숫자 8과 무한의 기호를 암시하는 중의적 의미가 있다. '제8일의 밤'은 영화에서 그려낸 악귀로 인한 세상의 종말이 결국 인간의 감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비유한다. 오지 않을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빛을 잃은 검은 눈, 과거에 벗어나지 못해 괴로워하다 분노가 차오른 붉은 눈. 그들은 존재하지 않지만 사라지지도 않는 것들이다. 그러니 인간의 집착으로 언제든 소환될 수 있는 것들이다. 감정에 치중한 탓인지 등장인물들은 대체적으로 말이 없다. 의도적으로 언어가 배제되기도 한다. 덕분에 이런 류의 장르에서 보기 드문 정적인 분위기가 도리어 오묘하게 다가온다.   


결국 영화는 감정을 다스리고 번뇌와 번민을 통한 깨달음, 집착과 카르마를 벗어나는 것은 스스로에게 달려있음을 일깨운다. 


'제8일의 밤'은 이 정신적인 깨달음이 초월적인 이성에 의존한다는, 실체없는 현상 세계의 성질에 대한 고찰을 담은 영화다. 신인 감독이 담아낸 주제와 메시지라기엔 퍽 명확하고 심도 깊다. 창작을 구현하는 방법도 오묘하고 독창적이다. 다만 이를 효과적으로 이끌어내는 스킬이 부족한 탓에 아쉬움이 크다. 공포물에 취약하고 심오한 깨달음에 심취한 이들이라면 나름 즐길만한 오컬트 스릴러다.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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