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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미집' 영화를 향한 뜨겁고 찬란한 러브레터 [리뷰]

      1970년대, 미치기 일보 직전의 영화 촬영장. 그곳에서 걸작에 심취한 감독, 바뀐 대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와 스태프, 그리고 못마땅한 제작자와 서슬 퍼런 검열 당국 감시자들이 벌이는 우스꽝스러운 촌극. 이를 통해 영화에 대한 순수와 낭만, 그리고 열정과 광기를 유쾌하게 그려낸 김지운 감독이다. 감독의 새롭고 실험적인 신작 '거미집'은 그의 진심 어린 자화상이자 영화에 보내는 뜨거운 러브레터다.  성공적이었던 데뷔작 이후 싸구려 치정극만 찍는단 평단의 가혹한 악평과 조롱에 시달리며, 데뷔작마저 스승 신감독의 유작 아니느냐는 의심을 받고 있는 김열(송강호) 감독. 그는 이미 신작 '거미집' 촬영을 끝냈음에도 며칠째 꿈 속에서 완전히 새롭고 파격적인 영화의 결말을 보며 영감과 충동에 휩싸인다. 그대로만 찍으면 틀림없이 걸작이 될 거란 근거 없는 확신에 사로잡혀 촬영을 강행하지만, 바뀐 대본은 지나치게 신여성주의적인 막장극이다. 서슬 퍼런 독재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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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거부감 없는 오컬트 판타지 [리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타겟층이 한정적인 퇴마 판타지 장르를 지극히 상업적이고 대중적으로 버무린 능력이 탁월하다.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이다. 천박사(강동원)가 어린 시절 아픈 감상에 젖었다 눈을 뜨는 순간,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이제껏 보지 못한 참신한 장르적 세계를 예고한다. 천박사는 대대로 마을을 지켜온 당주집 장손이지만 정작 귀신을 믿지 않으며, 신빨보다 말빨로 의뢰인을 홀리고, 상대의 생각과 마인드를 꿰뚫어 보는 귀신같은 통찰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가짜' 퇴마사다. 기존의 퇴마 영화들이 제법 진중하고 무거운 오컬트 장르관에 심취하고 집중했던 것과 달리 이 가짜 퇴마사의 행보는 유쾌하고 즐겁기 짝이 없다. 귀신 좇는 영상 콘텐츠를 다루는 '하늘천 TV' 유튜브를 운영하며 의뢰인을 끌어모으고, 그들의 불안 심리를 간파한 뒤 가짜 퇴마쇼를 벌여 사건을 해결하는 천박사. 능청스러움이 하늘을 찌른다. 정신과 의사 면허 소지자란 영리한 설정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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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7 보스톤' 잊힌 영웅들에 대한 뜨거운 경의 [리뷰]

    해방 이후, 가난과 설움과 울분이 가득했던, 가엾고 작은 나라의 이름 모를 동양인이 국제 사회에 당당히 이름을 알리게 된 엄청난 사건. 그러나 정작 자국민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대한민국 마라토너 이야기를 그린 영화 '1947 보스톤'(감독 강제규). 영화는 잊힌 역사 속 바래진 영웅들에게 차마 못다 한 존중과 감사를 표하며 현시대에도 퇴색되지 않는 가슴 벅찬 메시지를 전한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단상에 오른 금메달리스트의 모습은 의아할만큼 침울하고 비참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월계수로 가슴에 있는 일장기를 가린 금메달리스트. 그리고 그마저도 가릴 수단이 없어 바지를 최대한 올려 입은 동메달리스트의 모습. 영화의 시작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인 이름으로 시상대에 올라야 했던 손기정 선수의 수치와 비통함이 가득 담긴 표정. 이는 그 시절을 견뎌야만 했던 이들의 고통을 통감케 하는 모습이며, 현재의 대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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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확한 단점을 흥미롭게 보완한 '보호자' [리뷰]

    배우 정우성의 30번째 영화이자, 첫 연출작 '보호자'엔 그동안 정우성이 쌓아온 영화적 내공이 모두 집약됐다. 좋은 감독의 탄생이다.  10년만에 출소한 남자가 몰랐던 딸의 존재를 알고, 조직 생활을 청산하려 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보호자'. 영화적 스토리는 익히 봐왔던 진부한 답습이다. 이 뻔한 스토리란 약점을 정우성은 묵묵히 그만의 방식으로 풀어나간다.  영화의 시작은 이제 막 출소한 남자 수혁이 황무지를 터벅터벅 걷고, 그 끝에 있는 차에 올라타는 장면이다. 누군가가 이를 멀리서 지켜보는 신까지, 구도부터 삭막감이 감도는 전경이 돋보인다.  수혁이 딸의 존재를 알게 되고, 조직 생활을 청산하려는 과정은 뻔하디 뻔한 클리셰지만 정우성 역시 이를 알기에 최대한 절제된 감정과 스토리로 이를 대체한다.  비로소 흥미로워지는 건 조직의 2인자 성준(김준한)이 일명 세탁기라 불리는 2인조 해결사 우진(김남길)과 진아(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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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크리트 유토피아' 완벽한 디스토피아 [리뷰]

    온 세상을 집어삼킨 대지진으로 모든 것이 폐허가 됐지만, 유일하게 끄떡없는 건물 황궁아파트.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이 비현실적이며 독창적인 설정을 기발하게 풀어내며 세기말 상황의 다양한 인간군상을 통해 '웃픈' 현실과 공감대를 선사하는 영화다.  과거 살 곳이 없어지었다는 아파트는 현재 자산의 격차를 극명히 드러내는 지표가 됐다. '아파트 팔면 난민 된다'는 말이 실감 날 만큼 아파트를 향한 과열 현상과 수십억 단위로 급등하는 미친 집값은 현시대 가장 심각한 사회 현상이기도 하다.  영화는 시작부터 그런 아파트를 비롯한 모든 세상을 과감하게 때려부순다. 모든 걸 순식간에 폐허로 만든다. 오래되고 낡은 아파트지만, 유일하게 살아남은 황궁 아파트는 생존자들에게 꿈과 선망의 보금자리다.  이상기온으로 강추위까지 덮치자 살아남은 사람들은 황궁 아파트를 찾아오고, 아파트 입주민들은 이들의 존재가 거대한 위협이다. 나름 민주적인 절차를 밟아 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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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공식작전' 완벽한 상업영화의 미덕 [리뷰]

    김성훈 감독의 사려 깊은 시선, 치밀한 열정과 철저한 계획으로 완성된 '비공식작전'은 상업영화로서의 기능과 미덕을 완벽하게 충족시킨다. 영화적 재미 추구는 물론 작품 본질에 내재된 메시지까지 흠잡을 데 없이 수려하고 탄탄하다. 밀도 높은 작품의 탄생이다.  1986년 레바논 베이루트. 한국 대사관 소속 외교관이 현지 무장 세력에 의해 납치됐다. 그렇게 국가로부터도 잊힌 외교관에게서 21개월 만에 온 생존 무존. 미주나 유럽 발령을 위해 '비공식작전'에 자원한 흙수저 외교관 민준(하정우)은 배짱 하나만 갖고 홀로 레바논으로 떠나고, 그곳에서 만난 사기꾼 기질 다분한 생계형 택시 기사 한국인 판수(주지훈)와 온갖 역경과 고난을 헤치며 피랍된 외교관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영화는 최초의 한국 외교관 납치 사건을 모티브로 하지만, 해당 사건은 국가보안법으로 열람 금지돼 있어 자세한 정황을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피랍'과 '21개월 뒤 생환'이라는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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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문' 진일보한 기술력, 아쉬운 구식적 스토리 [리뷰]

    진일보한 기술력과 반비례하는 구식적 스토리가 아쉽다. 그럼에도 도전에 대한 가치는 값진 영화 '더 문'이다.  '신과함께' 시리즈로 한국형 지옥세계 판타지를 구현하며 쌍 천만 관객 동원 타이틀을 거머쥔 김용화 감독의 다음 스텝은 달을 향한 여정이었다. 국내에선 불모지라 여겨지는 SF 우주 세계에 대한 도전이라니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지만, 감독 다운 선택이기도 하다.  '더 문'은 2029년을 배경으로 한다. 5년 전 달 탐사선 계획의 처참한 실패 이후, 다시 우주를 향하는 우리호를 향해 걱정과 기대의 시선이 쏠렸다. 예기치 못한 태양 흑점 폭발로 인한 태양풍이 우리호를 덮치고 이를 수리하던 탐사대원 2명이 사망, 황선우 대원만 홀로 남겨진다. 우여곡절 끝에 홀로 달에 착륙해 우주 자원을 채취하던 그는 다시금 무섭게 쏟아지는 유성우로 인해 고립된다. 살기 위한, 살려내기 위한 고군분투가 시작된다.  영화는 익숙하고 낯선 달의 모습을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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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수' 해양범죄활극의 쾌적한 묘미 [리뷰]

    모든 게 살아있다. 70년대의 낭만, 향수를 자극하는 음악, 각기각색의 캐릭터들, 긴장과 이완의 드라마적 서사와 해양범죄활극의 시원한 묘미까지.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영화 '밀수'다.  70년대, 어느 어촌 마을에서 해녀들이 밀수를 했다더라. 한 소도시 박물관 사료에 적힌 이 한 줄의 문구로 밀수판에 가담한 해녀들의 이야기라는 큰 판을 벌린 류승완 감독. 이미 천만 전작을 보유할 만큼 믿고 보는 대표적인 스타 감독은, 관객의 기대에 아낌없이 부응한다. 충분히 쫄깃하고 흥미로운 서사, 스타 군단으로 채워진 다채로운 캐릭터들, 그리고 액션까지. 영화적 미덕을 요할 때 작품이 내포한 메시지나 철학은 그리 뜻깊지 않으나, 여름철 극장가를 겨냥한 오락 영화로서는 손색이 없다.  배경은 70년대 후반, 공업화가 시작된 가상의 어촌 마을이다. 장비조차 없이 수경 하나에 의지한채 바닷속에 시원하게 뛰어드는 해녀들의 활기찬 일상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70년대 흥겨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