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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부대' 불편한 소재, 기막힌 활용법 [리뷰]

    불유쾌한 현상의 민낯을 이리도 재치 있고 감각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건 확실한 특기다. 현대 사회에 잠식된 실체 없는 음모론, 그 속에 담긴 인간의 숨은 본능과 욕망까지. 온라인 여론조작이라는 소재를 통해 다시금 저만의 방식으로 깊이 있는 화두를 던진 안국진 감독의 신작 '댓글부대'다.  영화는 시작부터 현실과의 경계에 모호하게 발을 걸친다. 국정농단으로 인한 전 대통령의 탄핵, 이와 관련된 대기업 총수의 대국민 사과 등 실제를 연상케하는 뉴스를 삽입하고 이에 따라 연상되는 이미지를 대놓고 의도한다. 그럼에도 그 결이 퍽 무겁거나 진중하진 않다. 가벼운 내레이션을 통해 읊어지는 지나간 이야기, 그리고 세상을 바꾼 촛불 집회에서 제일 먼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간 이는 누구였을지 등. 흥미롭지만 사실 알아도 크게 쓸데없는 시시콜콜한 잡담을 해대는 덕분이다. 여하튼 그 속에서 작지만 점차 발전해 온 여론의 역사를 인식시킨다.  감독의 영리한 묘수는 시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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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묘', 가장 한국적인 오컬트 영화의 진수 [리뷰]

    파묘, 말 그대로 기존에 있는 묘를 파는 의미다. 영화 제목이 '파묘'라니, 직설적이면서도 실험적이고 독창적이다. 대한민국 영화사에서 오컬트 장르의 한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장재현 감독은 흙으로 돌아가는 한국의 장례문화와 무속 신앙, 이 고유한 전통과 민속적인 이야기를 갖고 더욱 견고하고 진화된 K-오컬트의 진수를 선보인다. 놀랍고도 경이로운 수작이다.  그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오컬트 미스터리 영화 '파묘'는 기획 단계부터 흥미롭다. 어렸을 적 100년이 넘은 무덤의 이장을 지켜본 장재현 감독은 당시 오래된 나무관에서 느꼈던 두려움, 궁금함, 호기심, 이런 복합적인 감정들을 언젠가 작품에 담고자 했다. 참 범상치 않다. 앞서 감독의 첫 상업영화 '검은 사제들' 역시 명동 골목길, 패스트푸드점 창가 너머, 어두운 곳에서 초조하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가톨릭 신부의 모습을 보며 떠올린 이야기였다. 이처럼 평범한 일상의 단면적인 이미지를 놓고 창의적인 발상을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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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드맨' 명확한 주제의 빈약한 활용도 [리뷰]

    영화 '데드맨'(감독 하준원). 주제와 메시지는 명확한데 효과적으로 풀어내질 못한다. 그래서 더 아쉽다.  오프닝은 꽤 강렬하다. 겨우 숨 쉴 틈만 연결해 놓은 좁은 관짝 안에서 옴짝달싹 못하며 빠져나가려 악을 쓰는 슈트 차림의 남자. 절박한 외침 끝에 강제로 열린 뚜껑, 남자가 본 세계는 마치 지옥과도 같은 아비규환이다. 수많은 상자에서 나온 사람들이 정체 모를 누군가들에 의해 봉으로 맞고 제압당한다.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폭력으로 짓밟는 이 끔찍한 곳은 대체 어디인가. 남자는 머리를 맞고 피를 흘리며 기절하고, 어디론가 끌려간다. 도망칠 수 없는, 도저히 살아서 나갈 수 없는, 죽은 자들의 감옥. '데드맨'의 시작이다.  이쯤 되면 불안감이 엄습하는 와중에 절로 호기심이 솟아난다. 인상 깊은 시퀀스다. 그러나 이후 이어진 이야기의 리듬은 들쭉날쭉하다. 이처럼 인상 깊은 시퀀스들은 몇몇 있는데, 스토리가 좀처럼 매끄럽지 못하다.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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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그데이즈' 가장 보통의 존재로 전하는 따뜻한 이야기 [리뷰]

    새롭고 특별할 것 없지만, 가장 보통의 존재로 전하는 삶의 이야기가 정겹고 소담하다. 영화 '도그데이즈'(감독 김덕민)다.  깔끔하고 까칠한 성격의 싱글남 민상(유해진)은 '영끌'까지 모아 산 건물을 개똥밭으로 만드는 세입자 수의사 진영(김서형)과 매일같이 전쟁 중이다. 오늘도 상쾌한 출근길에 개똥을 밟고 기분이 잡쳐 동물병원에 찾아가 한바탕 하는 길이다. 이에 '갑질'이라며 반박하는 진영. 병원에서 자고 먹는지 늘 동물 털을 달고 사는 지저분한 옷차림에 냄새까지, 민상이 딱 질색하는 유형이다. 하루빨리 내쫓아야지 싶을 따름이다.  세계적인 건축가로 여전히 명성이 드높고 모두의 존경을 받지만, 사람들과의 식사 자리도 에너지 낭비요, 시간 낭비라 여기는 노년의 여인 민서(윤여정)는 오늘도 넓고 좋은 집에서 쓸쓸히 홀로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다. 이민 간 아들과 형식적인 통화 후 더 큰 쓸쓸함이 감돈다. 그 곁을 지키는 건 강아지 완다 뿐. MZ세대 배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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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량: 죽음의 바다' 이순신 시리즈 최종장, 위대한 방점

    '노량: 죽음의 바다'. 무려 10년을 넘게 이어진 이순신 시리즈의 최종장이다. 마지막까지 장중한 여운을 선사한다.   영화는 임진왜란 발발로부터 7년이 지난 1598년 12월을 배경으로 한다. 왜군의 수장이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뒤 조선에서 황급히 퇴각하려는 왜군들과, 절대 이렇게 전쟁을 끝내선 안 된다는 이순신이 최후의 해상 전투를 벌이는 과정을 담고 있다. 거룩하고 위대한 노량해전, 그 끝에 이순신 장군의 최후가 예견되기에 울컥한 통념이 일지만 그 길고 참혹했던 7년간의 전쟁을 마무리한 끝에 비로소 밝혀드는 한 줄기 여명이 깊고 오랜 여운을 남기는 영화다.  첫 번째 시리즈이자 1700만 관객 동원이라는 기록적인 역사를 쓴 '명량'은 왜침으로 인해 모두가 위기와 패배감에 빠졌을때 굴하지 않고 불같은 의지로 극복하는 이순신의 모습을 그렸고, '한산: 용의 출현'은 철저한 대비와 전략으로 극심한 수세적 국면을 뒤집는 지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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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봄' 만감이 교차하는 12.12 그날의 기록 [리뷰]

      80년대를 장악한 군부 독재의 시발점은 불과 하룻밤 사이에 벌어진 군사 반란이었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운명을 바꾼 단 9시간의 기록. 김성수 감독의 영화 '서울의 봄'은 그 끔찍한 역사적 과오의 시간으로 돌아가 알려지지 않았던 그날의 퍼즐을 완성한다. 탐욕에 눈먼 자들의 만행을 적나라하게 담아내며 인간 본성에 대한 충격과 공포를 자아내고, 그럼에도 이에 맞선 자의 강직한 신념을 통해 이 시대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지를 여실히 깨닫게 한다. 단언컨대, 김성수 감독 희대의 역작이자 수작이다.  17년간 장기 집권하던 독재자가 사망한 뒤, 야만과 억압의 시대에 억눌려 살던 국민들은 혼란과 불안 속에도 마침내, '서울의 봄'이 오리라 믿었다. 허나 그 희망은 머지않아 처참히 짓밟혔다. 1979년, 12월 12일 벌어진 반란군의 쿠데타는 단 9시간 만에 정권을 장악했고, 그 끔찍한 어둠은 오랫동안 빛을 삼켰다. 그렇게 '서울의 봄'은 피워보지도 못한 채 허망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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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들' 뜨거운 외침, 실화극의 묵직한 여운 [리뷰]

    실화이기에 더욱 원통한 공분이 차오르고, 안타까운 연민이 인다. 그렇지만 종국엔 작은 희망과 안도가 깃든다. 그리고 여전히 사회를 지배하는 부당함과 불합리에 침묵하거나 외면하지 않는 이들의 값진 용기의 가치를 전한다. 숱한 실화극을 통해 시대의 이면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소외된 이들의 울분을 함께 했던 정지영 감독의 신작 '소년들'이다.  '소년들'의 가제는 '고발'이었다. 추악한 공권력에 처참하게 짓밟히고 망가진 약자들이 오랜 인고의 시간을 지나 가해자들을 고발하는 이야기, 약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그들의 용기와 아픔을 응원하며 위로하는 감독의 사려 깊은 마음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소년들'은 이른바 '삼례나라슈퍼 사건'으로 불리는 강도 살인 사건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1999년 무고하게 살인자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소년들이 2000년 재수사 과정을 거쳐 2016년 재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담는다. 사건의 연대는 꽤 복잡한 구조이지만, 감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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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미집' 영화를 향한 뜨겁고 찬란한 러브레터 [리뷰]

      1970년대, 미치기 일보 직전의 영화 촬영장. 그곳에서 걸작에 심취한 감독, 바뀐 대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와 스태프, 그리고 못마땅한 제작자와 서슬 퍼런 검열 당국 감시자들이 벌이는 우스꽝스러운 촌극. 이를 통해 영화에 대한 순수와 낭만, 그리고 열정과 광기를 유쾌하게 그려낸 김지운 감독이다. 감독의 새롭고 실험적인 신작 '거미집'은 그의 진심 어린 자화상이자 영화에 보내는 뜨거운 러브레터다.  성공적이었던 데뷔작 이후 싸구려 치정극만 찍는단 평단의 가혹한 악평과 조롱에 시달리며, 데뷔작마저 스승 신감독의 유작 아니느냐는 의심을 받고 있는 김열(송강호) 감독. 그는 이미 신작 '거미집' 촬영을 끝냈음에도 며칠째 꿈 속에서 완전히 새롭고 파격적인 영화의 결말을 보며 영감과 충동에 휩싸인다. 그대로만 찍으면 틀림없이 걸작이 될 거란 근거 없는 확신에 사로잡혀 촬영을 강행하지만, 바뀐 대본은 지나치게 신여성주의적인 막장극이다. 서슬 퍼런 독재정권…